딸기의 관능-욕망의 구조로 읽는 이상원의사진 3

딸기의 관능- 19th~25th Feb 1997 NaMu Gallery Seoul

이상원이 구사하는 어법은 상당한 부분에서 사진의 효용성을 먼저 떠오르게 한다. 이런 완곡한 표현은 곧 이작가의 사진이 시셋말로 광고사진과 예술사진으로 단순 이분법을 애용하는 우리 현실에서 광고사진처럼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진 또는 그 어떤 순수 조형물의 효용성은 사회적 계약관계 안에서 순수와 비순수로 나뉘며 광고용과 예술용(?)으로 구분된다. 그 이분법이 적당한 구별법은 아니지만 세태를 따르자면 일단 이답답한 방식안에서 차이점을 발견하는 헛된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갖고 일관된 메시지를 담는 노력을 한다. 우리는 그 결과물을 작품이라한다.
그리고 작품의 쓰임새는 사뭇 다른 사회적 메카니즘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 고민을 작가가 작업현장에서 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원의 작품에서 광고사진의 느낌을 받게되는 것은 그가 광고용으로 구분하느 감각을 자신의 작품에 적절하게 도입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무거운 느낌을 의식적으로 지워 버린다든지 디자인 감각이 눈에 띄도록 구성을 한다든지 하는 기술적 방법에서 우리는 일차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딸기의 관능 이상원 홈셰프 홈쉐프 개인전

그러나 예술사진과 광고 사진을 구분하는 허례를 불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읽는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을것이다.
물론 작가는 알맹이없는 내용을 그저 감각에 의존하여 의사작품으로 둔갑시키려는 허황된 태도에 반성해야 하겠지만 이런 의사형식(가짜)의 어떤 작품도 이미 사회적 효용성을 갖을 수는 없다.
작가와 함께 감상자들도 보는 방법에(the way of seeing)대해 상호간 책임있는 태도를 요구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나친 감각을 드러내는 작품은, 특히 이상원의 사진에서 그런 우려를 보이는 작품은 오히려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전달하는데 있어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일 뿐이다. 연출된 사진이란 작가의 의도와 인식의 방법이 연출되는 것이지 작품 한 장에 코디네이션만을 연출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관능의 미는 앞서 지적한 미니스커트처럼 연출되지 않는한 쉽게 외설이라는 경계너머로 훌쩍 달아날 수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그 내적 의미를 읽어내는 태도는 순수조형의 창작에있어 매우 중요한 기재로 현대미술에서 사용되고 있다.
수 많은 방법론에서 자신이 선택한 유일성은 과정의 집요한 관계 안에서 결정된다. 그리고 그 결정된 상태에서 우리는 작품을 보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작가는 자신의 관점이 사회적 태도로 살아남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상원의 ‘사물에 있어 관능에 대한 탐닉’은 최소한의 결실을 맺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것을 유지할 작가의 힘에 오히려 관심이 간다.
왜냐하면 작가는 미묘한 경계위에서 외설과 예술이라는 진부한 가름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1997 이 섭 (전시기획자, 큐레이터)
★첫번째 개인전람회를 개최하는데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주신 이 섭 선생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